군(軍)이라는 울타리는 동시에 같은 공간이면서도 전혀 다른 규칙으로 호흡하는 독자적인 생태계입니다. 저는 지난 수 년간 그 안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을 변호해 오며, 매년 발표되는 국방부 통계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임을 절감해 왔습니다. 2019년부터 2024년 8월까지 징계 처분으로 이어진 군 성폭력 가해자는 2 889명이며, 이 가운데 파면된 간부만 123명에 달합니다. 신고율은 여전히 4 % 남짓에 불과하지만, 드러난 사건만으로도 한 해 700건을 넘긴 적이 있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군인 성범죄가 ‘같은 범죄, 다른 풍경’이 되는 첫째 이유는 공간의 폐쇄성과 위계 구조입니다. 사건 현장인 생활관·사무실·막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장병들은 ‘상명하복’이라는 공기에 눌립니다. 피해자 가운데 80 % 이상이 가해자를 상관으로 두는 현실에서 “용기 있게 신고하라”는 권고는 오히려 피해자에게 일종의 저격수 앞에 서라는 주문이 되기 쉽습니다.
둘째 이유는 이중으로 겹쳐 있는 법체계입니다. 같은 강제추행이라도 군형법은 형법보다 형량 하한을 높여 1년 이상의 유기징역만을 규정하고, 벌금형 선택지를 아예 두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엄격한 잣대’ 같지만 실제로는 처벌 수위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어 변호 전략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벌금형 가능 여부”가 민간 사건이라면 첫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항이지만, 군 사건에서는 조문을 한 번 더 들여다봐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됩니다.
셋째는 재판 기관의 변화입니다. 2022년 7월 1일 시행된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살인·성폭력 등 중대 범죄는 1심부터 민간 법원이 맡게 되었습니다. 2024년 중반까지 군에서 민간으로 이첩된 사건은 422건이며, 이 가운데 92 %가 성폭력 사건입니다. 관할이 달라지면 구속 기간·증거 개시 시점·피고인의 진술 전략이 180도 바뀌므로, ‘관할 다툼’은 전문성이 빛나는 첫 전장이 됩니다.
마지막 이유는 징계와 형사 절차가 나란히 달리는 ‘이중 트랙’ 구조입니다. 기소가 이루어지는 순간 해당 장병은 보직이 변경되고 진급이 중단되며 급여 일부가 정지됩니다.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 “끝까지 싸워 보겠다”는 결심과 “당장 생활은 어떻게 하나”라는 절망을 동시에 감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군형법 전문 변호사의 역할은 형사 방어에 그치지 않고, 징계 절차 동행·분리 조치 요청·전역 후 인사소청까지 연결되는 복합적인 업무로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건을 의뢰받을 때마다 ‘군이라는 문지방’을 우선 치웁니다. 부대 출입 절차와 증거 봉인 규정, 보안 등급을 파악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군사경찰 보고서를 민간 검찰 기준에 맞춰 다시 분해합니다. 관할이 불확실할 때는 두 재판 체계가 요구하는 입증 책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서류를 준비합니다. 초동 수사 48시간이 지나 사건 배당이 확정되면, 이미 어느 길이든 달릴 준비를 마친 셈입니다.
군은 국가와 조직, 그리고 장병 한 사람 한 사람의 꿈과 명예가 쌓이는 공간입니다. 그곳에서 발생한 성범죄를 다루는 변호사는 피해자에게는 생존의 동아줄이, 피의자에게는 무너지는 세월을 지탱해 주는 마지막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군형법은 각 조문마다 군의 특수성을 전제로 하지만, 제가 끝까지 붙드는 기준은 헌법이 선언하는 ‘인간의 존엄’입니다. 이 존엄이 훼손될 때, 통계에 기록되는 사건 하나가 또 다른 병사의 목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폐쇄된 울타리 너머로 정의를 끌어들이려면 울타리 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울타리 밖의 빛을 잃지 않는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저는 매 사건이 ‘침묵의 연습’이 아니라 ‘말하기의 시작점’이 되도록 돕고자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군이 성범죄 통계를 자랑이 아닌 역사적 반성으로만 되돌아보게 될 그날까지, 제 자리에서 울타리를 조금씩 허물어 나가겠습니다.
— 군형법전문변호사 배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