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 성범죄 사건을 맞닥뜨렸을 때, 변호사가 전하는 시간별 대응 전략
성범죄는 고소장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피의자의 사회적 생명을 끊어 놓습니다. 언론은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혐의를 기정사실화하고, 주변 사람들은 사실관계보다도 “그럴 법하다”는 인상에 휩쓸립니다. 저는 수백 건의 성범죄 사건을 수임하며 무고의 늪에 빠진 사람들에게 공통된 절망의 눈빛을 봐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진실은 결국 법정에 기록으로 남고, 기록은 전략적 대응으로 완성됩니다. 이 글은 혐의 통보부터 무죄 확정 이후까지, 시간을 따라가며 반드시 짚어야 할 행동 원칙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의혹 인지 직후 – “첫 단추는 증거다”
사건은 대개 ‘지인에게 들은 소문’이나 ‘경찰 출석요구서’ 한 장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침묵과 증거 보존입니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모든 대화가 녹음·캡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휴대폰 · 노트북의 메시지 기록, 이동 경로를 입증할 수 있는 CCTV 위치, 당시 동행자 연락처까지 “증거 후보”를 빠짐없이 목록화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조력자 확보입니다. 수사 초기 진술의 ‘한 문장’이 훗날 배심원의 마음을 결정합니다. 피의자신문에 동석할 변호인을 이 단계에서 선정하지 못하면, 수사기관의 질문 의도에 따라 증언이 왜곡될 위험이 커집니다.
2. 경찰 조사 – “기억은 흐릿해져도 조서는 남는다”
고소장 접수 뒤 1~4 주면 첫 피의자신문이 이루어집니다. 경찰서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상황은 기록입니다. 묵비권은 방어권의 핵심이지만, 무조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사실관계가 명확히 반박되는 부분만을 선별해 조서를 구성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반드시 영상녹화를 요청하십시오. 성폭력 사건은 ‘진술 대 진술’ 구조가 많아, 조사 과정 자체가 증거가 됩니다. 조사 종료 후 조서를 검토할 때는 ‘세 줄 원칙’—전부 읽기, 틀린 곳 손정정, 정정 부분마다 서명—을 지키십시오. 서둘러 조사실을 빠져나가고 싶어도, 이 마지막 10 분이 미래 10 년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3. 압수·수색·구속 국면 – “절차를 지켜라, 그것이 방패다”
수사가 본격화되면 휴대폰 포렌식, 주거지·사무실 압수·수색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때 영장 사본 요구와 목록 촬영은 법이 보장한 권리입니다. 무엇이 가져가졌는지 정확히 기록해 두어야, 훗날 ‘증거 왜곡’ 또는 ‘디지털 파일 위·변조’ 주장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구속영장 청구가 예상되면, 변호인은 즉시 영장실질심사(48 시간 내) 준비에 착수합니다. 피의자의 생활 환경, 가족 부양 의무, 직업적 고정성 등을 종합해 보증금 조건부 석방을 설득해야 합니다. 신병이 확보돼야 방어권도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4. 검찰 단계 – “추가 증거의 골든타임”
경찰에서 기소 의견으로 송치되면, 기록이 검찰에 ‘도착하기 전 7일’이 골든타임입니다. 이 사이에 피의자 의견서와 보강증거를 제출해 수사기록에 편철하도록 해야 합니다. 2025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변호인의 기록 열람·등사 범위가 넓어졌으니, 경찰 수사에서 누락된 CCTV·GPS·통신기록을 직접 확보해 추가 포렌식이나 참고인 조사를 요청하십시오. 검사가 ‘혐의없음’ 결정을 내리려면, 송치 단계에서 방어 논리가 완결돼 있어야 합니다.
5. 1심 공판 – “진술 대 과학”
법정은 사실상 기억과 과학의 대결입니다.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을 깨뜨릴 수 있다면 무죄 Probability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갑니다. 촬영·통화 시각이 기록된 메타데이터나 GPS 로그가 피해 주장 시간대와 어긋난다는 점을 디지털 포렌식으로 입증하면, 배심원·판사는 자동으로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됩니다.
2025년 성폭력특례법 개정으로 피해자 보호 절차가 강화되며, 비공개 증인신문이 확대됐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은 여전히 헌법적 권리입니다. 변호인은 비공개 절차 속에서도 ‘진술 세부 일시 불일치’ 같은 구체적 오류를 집요하게 짚어야 합니다.
6. 무죄 확정 이후 – “명예를 되찾는 또 다른 소송”
판결 선고로 형사 절차가 끝나더라도, 실질적 회복은 ‘형사보상·민사손배·온라인 평판 관리’라는 세 개의 소송을 통해 완결됩니다. 구속 또는 압수로 인한 손해는 국가상대 형사보상으로, 변호사 비용과 정신적 피해는 피해자(혹은 무고인) 상대 민사소송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포털과 언론사는 무죄 판결문·불기소 결정문을 근거로 기사 삭제·정정 의무를 부담합니다.
그리고 무고죄—형법 제156조—는 단순히 복수를 위한 카드가 아닙니다. 허위 고소를 억제해 형사사법의 신뢰를 지키려는 공익적 절차이므로, 사실관계가 명백해졌을 때는 반드시 활용하여 “거짓말의 비용”을 분명히 하십시오.
맺으며: ‘결백의 증명’은 법의 언어로 쓰는 긴 호흡의 기록이다
무고한 성범죄 혐의가 덮쳐올 때, 사람들은 순간의 감정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수사는 ‘제출된 기록’만을 보고, 재판은 ‘법정에 현출된 증거’만을 판단합니다. 억울함을 진실로 바꾸는 유일한 경로는 법이 허용한 절차를 빈틈없이 활용하는 것입니다.
침묵과 보존, 절차와 기록, 과학과 설득—이 세 쌍의 단어를 가슴속에 새기십시오. 변호사는 그 단어들을 연결해 한 편의 서사를 완성하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 서사의 결말은, 준비된 피의자와 치열한 변호인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억울함보다 앞서 전략을 세우십시오. 그러면 진실은 법정에서 반드시 얼굴을 드러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