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봄방학이었습니다. 열여섯 살 소년은 SNS로 “공부 잘되는 영양제”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전자담배 팟에 담긴 갈색 액체를 택배로 받았습니다. 며칠 뒤 경찰은 합성대마 흡입 혐의로 그 아이를 조사했습니다. 작년 한 해 수사기관에 적발된 10대 마약사범은 649명. 역대 최다였던 2023년 1 477명과 견주면 56 % 가까이 줄었지만, 여전히 하루 두 명꼴입니다.
숫자가 줄었다고 안심하기엔 이른 까닭이 있습니다. 압수품 통계를 보면 액상형 합성대마·펜타닐 패치 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형태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전자담배 팟에 담긴 합성대마 양성 압수 건수는 2024년 3 320건으로 1년 새 두 배를 넘겼고, 합성대마 검출 수치도 5 650건으로 치솟았습니다.‘냄새가 적다’ ‘휴대가 쉽다’는 특성이 청소년을 겨냥한 판매망과 맞물려 부모의 레이더를 교묘히 벗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식약처·교육부가 올해부터 전국 중·고교 215만 명 대상 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해 학기마다 마약 안전교육을 의무화했습니다(2024. 8. 17 시행). 그러나 제도는 ‘사후(事後)의 안전망’일 뿐, 아이가 이미 수사 선상에 올랐다면 부모의 대응이 결과를 바꿉니다.
자녀가 마약 혐의를 받았을 때, 부모가 먼저 해야 할 세 가지
첫째, 감정보다 절차를 챙기십시오.
처음 경찰 연락을 받으면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부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현행법에서 마약류압수·수색은 휴대전화 포렌식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삭제·초기화 시도는 증거인멸 오해를 불러와 구속 가능성을 높입니다. 경찰서로 향하기 전, 형사전문변호사와 통화해 휴대전화 백업·포렌식 절차에 대한 조력을 받으십시오. 디지털 사본을 확보해 두면 이후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생깁니다.
둘째, ‘청소년사법 절차’를 적극 활용하십시오.
만 19세 미만 피의자는 소년부 송치가 원칙입니다. 부모는 조사 단계에서 ▲보호사건 전환 가능성 ▲임시조치(귀가, 조건부 기소유예) ▲대체교육 이수 프로그램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초범이고 자발적 치료 의사가 확인되면 소년보호 1·2호(보호자 감호·수강명령) 처분으로 형사기록을 남기지 않는 길도 열립니다. 그러나 이는 초동 조사에서 “마약의 유통·판매 목적이 없었다”는 사실관계가 명확할 때만 가능합니다. 불리한 진술을 막기 위해서라도 변호인의 동석은 필수입니다.
셋째, 치료를 ‘선제 조건’으로 제시하십시오.
최근 법원은 폐쇄병동 입원·약물중독 재활 이수를 선제적으로 진행한 청소년에게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를 병합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부모가 전문기관 상담·치료 과정을 서둘러 준비하면 재판부는 ‘재범 위험 감소’로 평가합니다. 특히 합성대마·펜타닐은 신경계 손상이 빠른 만큼, 국립정신건강센터·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연계 치료를 서두르십시오.
변호사로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두 가지
- “사실 인정=형사처벌”이 아닙니다.
아이가 혐의를 일부 인정하더라도, 투약 횟수·함량·의도에 따라 소년보호,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치료 감호 등 여러 갈래의 처분이 가능합니다. 부모님의 침착한 태도는 아이가 ‘불필요한 부인’으로 신용을 잃지 않도록 돕습니다. - “교우관계 공개”는 득보다 실이 큽니다.
부모님이 SNS·단체채팅을 공개해 공범을 밝히려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러나 또래 연루 여부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실 확인·압수수색으로 확인할 사안입니다. 자의적 공개는 아이와 친구 모두에게 낙인을 남길 위험이 큽니다.
맺음말 | “마약 문제를 ‘비행’이 아닌 ‘위기’로 바라봐야 합니다”
저는 상담실에서 “우리 아이만은 다를 줄 알았다”는 탄식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통계를 들여다보면 청소년 마약범죄는 특정 가정환경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SNS로 손쉽게 열리는 시장, 연구실에서 쏟아지는 신종 마약, 그리고 아이들의 호기심이 삼각형을 이룹니다.
부모가 할 일은 창피함을 감추는 것이 아닙니다. 법적 절차를 정확히 이해해 아이를 ‘형사처벌의 덫’에서 건져 올리고, 동시에 재활의 끈을 놓지 않는 일입니다. 자녀의 잘못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잘못이 ‘낙인’이 되지 않도록 방어할 책임은 우리 어른에게 있습니다.
청소년 마약사건은 감정 싸움이 아니라 시간과 증거, 치료를 다투는 레이스입니다. 첫걸음을 법률 전문가와 함께 내디디십시오. 부모님의 침착한 한 걸음이, 아이의 인생을 되돌릴 먼 길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형사전문변호사 배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