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엔데믹 시대가 개막되며 그 동안 줄었던 술자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적당한 음주는 스트레스 해소나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주량을 넘어 과도하게 술을 마시면 평소보다 판단력이 흐려지고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술을 마시고 일어날 수 있는 범죄 중 하나가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과 같은 성범죄다.
준강간과 준강제추행은 모두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인 상태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로, 각각 강간과 강제추행에 준하여 처벌된다. 준강간이 인정되면 3년 이상의 징역, 준강제추행이 인정되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특히 준강간은 징역형의 하한선만 정해져 있을 정도로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큰 범죄이기 때문에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지 못하는 한 실현 선고를 통해 구속이 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이처럼 처벌의 위험이 크다 보니 무조건 범죄에 대한 부인을 하거나 피해자와의 합의를 진행하기 위해 무작정 피해자에게 연락하거나 심지어 찾아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범죄의 구성요건을 기준으로 실제 사건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허점을 찾아내어 무혐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은 개인의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 과정에서 2차 가해를 입히거나 피해자에게 위협을 가한다면 오히려 처벌이 무거질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준강간과 준강제추행은 각각 성행위 또는 추행이라는 행위적 요건도 중요하지만 범행 당시 피해자가 심신상실, 항거불능 상태였는지 여부가 범죄의 성립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이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심신상실이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잠에 들거나 인사불성인 상태는 물론 술에 만취하여 의식이 없는 경우도 심신상실로 볼 수 있다.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외의 사유로 인해 심리적,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의미한다.
다만, 항거불능은 행위자가 조성한 상태가 아니라 이미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의로 피해자에게 독한 술을 많이 먹이거나 주량 이상으로 술을 마시게 강요하여 정신을 잃게 만들고 그 상태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이는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이 아니라 강간이나 강제추행, 나아가 상해 혐의까지 추가될 수 있는 문제다.
법무법인 온강 이고은 변호사는 “술을 마셔서 단순히 기억이 끊긴 ‘블랙아웃’ 상태일 때에는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으로 보지 않지만 아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패싱아웃’ 상태라면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의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판례를 통해 확인된 재판부의 태도다. 이러한 차이를 제대로 알고 사건을 풀어가야 제대로 된 판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 전후 주변 정황이 담긴 CCTV나 블랙박스, 술자리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증언 등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입장을 주장해야 한다. 사실 관계에 어긋나는 주장을 무리하게 펼치면 처벌이 가중될 수 있으므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