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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그 경계가 무너지다

안녕하세요. 소년법전문변호사 이고은 변호사입니다.

00년대 이전에 학창시절을 경험한 어른세대라면 ‘학교 폭력’이라 하면 교실 복도나 운동장 한구석에서 주먹이 오가고, 거친 욕설이 난무하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일상은 더 이상 그 좁은 물리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스크린 너머, 채팅창의 메시지 하나, SNS에 올라간 짧은 영상 한 편이 평범했던 학교 생활을 순식간에 지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폭력의 현장이 넓어졌고, 그 방식도 다채로워졌습니다.

 

손끝으로 가해지는 폭력

이전의 학교 폭력은 주로 ‘몸싸움’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분명하고, 가해와 피해가 어느 정도 구분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아이들은 SNS, 온라인 게임 채팅, 메신저 단체 대화방, 익명 게시판을 통해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모욕적인 단어와 집단 따돌림, 심지어 성착취물, 딥페이크 허위음란물까지. 이러한 괴롭힘의 결과물이 스크린을 타고 퍼져나가면, 피해 학생은 교실에 앉아 있어도 누구 한 명에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방과후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점에서 좀더 지속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방과후에도, 때로는 그날 밤 꿈속에서도 화면 속 비난이 되풀이됩니다.

 

방법의 다양화, 책임의 불분명

이처럼 수단과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어디까지를 폭력으로 볼 것인가’라는 물음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얼굴을 때린 것도, 채팅방에 비방글을 올린 것도 모두 폭력입니다. 그러나 때리면 다치고, 상해가 발생하는 물리적 폭행과는 달리, 디지털 흔적은 지우면 지워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좀 더 교묘한 괴롭힘이 가능한 것이죠. 가해자는 타인의 계정을 빌려 메시지를 남기기도 하고, 익명성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합니다. 법적으로도, 학교 내부 규정에서도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영역이 많아 제재나 구제 절차가 제때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어른의 시선은 한계를 갖고 있다

가해와 피해의 경계를 선명히 나누는 것이 불가능해지면서, 어른들은 종종 ‘피해가 그 정도인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난이었겠지”, “요즘 애들은 다 이렇게 노는 걸” 같은 말은 피해 학생에게 “네 고통은 대수롭지 않다”는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물리적 폭행을 당하고 돈을 빼앗기는 등의 직접적인 가해양상을 가지고 있었던 과거의 학교폭력의 이미지에 익숙한 어른들은 SNS, DM 등으로 괴롭히는 것이 어느정도의 고통으로 다가오는지 공감하기 쉽지 않을 수 있죠. 그러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누적된 모욕감과 두려움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성폭력, 언어폭력, 사이버 폭력, 따돌림—이 모든 행위는 물리적 충격 이상의 정신적 고통을 동반합니다. 어른의 시선이 무심히 흘려보낸 사이, 학생들은 돌이킬 수 없는 정서적 부담을 지고 학교를 떠나기도 합니다.

 

폭력의 정의를 다시 쓰자

우리는 이제 “누가 나를 때렸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나의 일상을 침해했느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학교 폭력 대응 매뉴얼은 여전히 때리고 맞는 물리적 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디지털 세대의 폭력은 훨씬 은밀하고 집요합니다. 가해 행위가 공개되지 않거나, 기록이 남더라도 곧 허위사실로 치부될 수 있는 현실에서,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의 균형을 맞추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변호사의 제언

피해를 입은 학생과 부모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법적 조치나 상담을 고민하기 이전에, 일단 ‘증거 보존’입니다. 메시지 스크린샷, 대화 기록, 게시물 URL 등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아두세요. 그리고 학교나 경찰, 상담기관에 지체 없이 신고하시길 권합니다. 어른들은 단순한 폭행만을 폭력이라 판단하지 마십시오. “보이지 않는 폭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는 디지털 폭력에 대한 명확한 교칙 개정과 교육이 시급하며, 법률 영역에서도 사이버 폭력에 대한 정의를 넓히고 가해자의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며

학교 폭력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의 폭력 개념을 뛰어넘어, 모든 형태의 괴롭힘과 침해를 ‘폭력’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물리적 충돌만이 폭력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언어, 지워진 기록, 숨겨진 눈물도 결국 동일한 폭력의 얼굴입니다. 어른의 잣대로 피해의 크기를 재단해서는 안됩니다. 때론 그 고통이 작게 보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세상을 등지게 할 만큼 절대적인 악몽일 수 있습니다. 오늘도 스크린 너머에서 전해지는 작은 비명에 귀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