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성범죄 피해를 입은 중국 국적의 주 모 씨는 “경찰서를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웠다”고 털어놨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혼자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동생을 불러 도움을 청해야 했다. 이와 비슷한 어려움은 레바논 출신의 외국인 여성도 겪었다. 11년째 한국에 거주 중인 그는 경찰서에서 ‘위임’이라는 단어조차 이해하지 못해 번역기에 의존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의 수는 이미 전체 인구의 5%를 넘어섰다. 영주권자나 재외동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체류 자격으로 수십 년간 한국에서 일상을 꾸려온 외국인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법 앞에서는 여전히 낯선 존재로 머무는 외국인이 많다.
경찰은 원칙적으로 한글 고소장을 요구하며, 외국어 작성이 불가피할 경우 통역을 통해 재번역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인력 부담이 크고, 일부 경찰은 통역 제도 자체를 숙지하지 못한 채 사건을 처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제도적 미비는 외국인 피해자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한 법원은 ‘실질적인 거주 여부’보다는 ‘체류 자격’이라는 형식적 요건에 더 무게를 두며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산정 시에도 국내 수입이 아닌, 출신 국가의 통계임금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있어 외국인이 정당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은 이미 이주 사회로 진입했지만, 제도는 여전히 ‘외국인은 예외’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공공기관은 민간 통역사를 채용하고 있지만, 규모는 작고 통역 서비스를 신청해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현실을 지켜보며 배한진 변호사(법무법인 온강)는 “외국인의 권리가 여전히 형식적으로만 보장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권리는 분명히 주어졌지만, 실제로 닿기까지는 수많은 절차와 장벽이 있다. 그 과정을 세심하게 살피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배한진 변호사는 “외국인이 처음 법무법인을 찾는 순간부터 위축되지 않도록, 법보다 먼저 다가가는 변호사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문다는 건 결국 사람 사이의 신뢰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또한, “외국인을 단순한 ‘일시 체류자’가 아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대하는 시선. 그 변화는 제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법은 종이 위에 있지만, 정의는 사람 사이에서 움직인다”고 덧붙였다.
출처 : 이투뉴스(http://www.e2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