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에서 종종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동성 간 일이면 법적 판단이 다르지 않나요?”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법은 성적 지향을 보지 않습니다. 동성 간 성적 행위라서 처벌하는 것도, 이성 간이라서 봐주는 것도 없습니다. 핵심은 언제나 한 가지, 동의가 있었는가입니다. 이 글에서는 동성 성범죄가 법적으로 어떻게 다뤄지는지, 그리고 억울하게 피고소되었거나 피해를 입었다고 느낄 때 각각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담담히 풀어보겠습니다.
법이 보는 ‘동성 성범죄’의 쟁점: 성별이 아니라 의사와 수단
우리 형법과 성폭력처벌법 체계는 성별 중립적입니다. 폭행‧협박 또는 위력으로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면 강제추행‧유사강간 등으로 처벌됩니다. 술‧약물‧수면 등으로 상대가 실질적 거부 의사를 표현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이용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둘이 연인 사이다”, “평소 스킨십에 관대했다” 같은 과거 정황이 아니라 그날 그 시점, 그 행위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재적인 동의가 있었는지입니다. 한 번의 동의가 다음 상황까지 자동 연장되는 일은 없습니다.
동성 사건에서 특유의 양상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직장·군대·운동부·동아리처럼 수직적 관계가 뚜렷한 공간에서, 선배·상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장난” “의례”를 가장한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반대로, 데이팅 앱으로 만난 사이에서 처음에는 호의적이었지만 실제 만남에서 강압이 더해져 문제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결국 쟁점은 같지만 증거의 모양이 다릅니다. 메시지 기록, 위치·결제 로그, 앱 프로필·대화 내역 등이 사건의 앞뒤 맥락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피해자라면: 안전 확보 → 증거 보존 → 절차 진입
동성 사건의 피해자들은 특히 아웃팅(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성적 지향 공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망설입니다. 그러나 늦을수록 사실관계가 흐려지고 2차 가해가 커집니다. 먼저 접촉을 끊고 안전을 확보하세요. 그다음 증거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메시지와 통화 녹취, 택시·결제·출입기록, CCTV 요청 가능성, 병원 진단서와 상담 기록까지 가능한 범위에서 모아두십시오. 삭제하거나 덮어두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수사기관에는 비공개 조사, 영상녹화 진술, 신변보호·접근금지 같은 보호조치를 요청할 수 있고, 전담기관을 통해 삭제 지원이나 의료·법률 지원을 연계받을 수 있습니다. “합의하고 끝내자”는 압박이 오면, 합의 조건과 문구가 형사 결과에 직결될 수 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전문가와 상의한 뒤 결정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피고소인이라면: 연락 중단 → 기록 보존 → 말보다 자료
억울하다고 느껴지더라도 추가 연락은 금물입니다. “사과 문자 한 통”이 사건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사례를 수없이 봤습니다. 다음으로 모든 기록을 원본 상태로 보존하세요. 만남 전후의 메시지, 앱 대화, 동의 여부를 짐작케 하는 표현, 장소·시간을 특정할 수 있는 영수증·이동 기록, 함께 있었던 제3자의 진술 가능성까지 정리합니다. 음주·약물·숙박 같은 변수는 쟁점을 복잡하게 만드니, 사전 설명이 있었는지 “거절 시 즉시 중단했는지”를 시간순으로 메모해 두면 진술 일관성에 도움이 됩니다. 초기 조사에서 “그럴 의도는 없었다”, “장난이었다” 같은 감상은 불리하게 작용하기 쉽습니다. 사실·시간·자료 중심의 답변을 준비하시고, 진술 전 변호인과 법리(폭행‧협박‧위력, 항거불능, 동의 철회) 를 점검하십시오.
편견과 오해를 경계하기
동성 사건은 편견을 타고 왜곡되기 쉽습니다. “남자끼리는 괜찮지”, “여자끼리 스킨십은 애정표현이지”, “그냥 장난이었잖아” 같은 말은 법정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성적 지향을 이용해 허위 고소로 보복하려는 시도 역시 단호히 차단되어야 합니다. 법은 피해자 보호와 피의자 방어권 사이의 균형을 요구합니다. 조사자는 편견 없는 질문으로 사실을 수집해야 하고, 당사자들은 분노·수치심 대신 기록과 절차로 말해야 합니다.
합의와 사과, 어떻게 볼 것인가
성범죄 사건에서 합의는 유의미한 요소이지만 면죄부가 아닙니다. 합의 과정에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표현을 섣불리 넣거나, ‘재발 시 고소’ 같은 조건을 덜컥 수락하면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피해자 입장에서도, 금전 합의만으로 상처가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사과의 방식, 접근 금지·치료 이수 등 행동 약속이 동반되어야 실질적 보호 효과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합의 전후 모든 대화는 기록을 남기고 제3자 검토를 거치시길 권합니다.
맺으며: ‘관계’가 아니라 ‘행위’를 본다
동성 성범죄는 ‘동성’이라는 이유로 특별하게 보아야 할 사건이 아닙니다. 다만 편견과 아웃팅 공포 때문에 신고·진술·방어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초기의 한 걸음이 중요합니다. 피해자는 안전과 증거, 피고소인은 연락 차단과 기록, 그리고 양측 모두 전문가의 조력을 통해 사실을 복원하십시오. 법은 결국 행위의 구체적 경위와 동의의 유무를 따집니다. 감정이 아니라 자료로, 분노가 아니라 절차로 다루어야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당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사실을 증명하는 작업부터 함께 시작하겠습니다.
형사전문변호사 배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