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스토킹 유형 반영하기 어려워
기간은 짧고 처벌은 약한 잠정조치
법 해석을 위한 실무자 교육 필요
“피해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스토킹이 본격적인 사회 문제로 부각되며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된 지 어느덧 4년이 지났다. 법은 피해자를 보호해 준다는 희망처럼 등장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 기대를 따라가지 못한다. 법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안전이 보장되지는 않기에,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법의 빈틈을 메워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과연 법이 내세운 ‘피해자 보호’라는 약속은 지금 어디까지 도달했을까.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 법의 그림자
과거 스토킹은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지속적 괴롭힘’으로 분류돼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치는 등 처벌 수위가 낮았다. 2021년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이 강화됐다. 이 법은 스토킹 행위에 대한 법적 정의와 가해자 제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의 약속이 피해자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기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먼저 스토킹처벌법에서 규정한 범죄 구성 요건이 다양한 유형의 스토킹 범죄를 포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스토킹 행위의 유형을 7가지로만 한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실제 스토킹은 이보다 훨씬 가변적이고 교묘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원혜욱 교수(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스토킹 행위의 정의 중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며 “심리적으로 위축된 피해자는 명확한 거부 의사를 드러내지 못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켜야 한다’는 규정 역시 스토킹의 위험을 축소할 수 있다”며 “불안과 공포를 유발하지 않더라도 스토킹 행위는 그 자체로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지적했다.
경직된 법 규정 탓에 피해자들은 수사 과정에서도 어려움에 직면한다. 장다혜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수사관은 스토킹처벌법의 취지보다 규정 해석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며 “명시적 거절 의사가 있었는지 직접 입증하기 위해 피해자가 가해자와 연락을 하던 중 더 큰 피해를 당한 사례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박태범 법무법인 강남 대표변호사는 “‘정말로 가해자가 피해를 주는 행동을 했냐’는 식의 추궁식 심문은 피해자에게 심적인 고통과 더불어 불안감을 상기시키기도 한다”고 전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었던 반의사불벌 조항은 2023년 법 개정을 통해 폐지됐다. 그럼에도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를 확인하는 관행은 여전하다. 서혜진 변호사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힐 경우 감형 등 가해자에게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지인 관계에서 발생한 스토킹은 가해자의 회유나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처벌 의사를 철회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채수아 법무법인 진수 변호사는 “실제 조사 현장에서 피해자들은 ‘처벌을 원한다’는 말을 직접 하는 것만으로 죄책감과 불안을 느낀다”며 “마치 자신이 가해자를 감옥에 보내는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스토킹처벌법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잠정조치의 기간이 짧아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응급조치·긴급응급조치·잠정조치가 포함된 보호 조치는 피해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가해자의 접근을 제한하거나 격리하는 제도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수단인 잠정조치의 효력은 현행법상 3개월로 제한된다. 이후 두 차례에 한해 각각 3개월씩 연장할 수 있지만 최대 9개월에 불과하다. 김미덕 교수(성신여대 창의융합학부)는 “연장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최대 9개월이라는 현행 규정은 현실적 측면에서 피해자를 보호하기에 짧은 기간”이라고 말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본적인 기간이 짧고 이후 연장하는 방식이라 지속적인 보호에 한계가 있다”며 “짧은 기간만 보호한다는 원칙은 지속적·반복적인 행위라는 스토킹의 특성과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해자가 잠정조치를 위반할 경우 내려지는 처벌 역시 미미하다.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해자의 잠정조치 위반 건수는 ▲2022년 533건 ▲2023년 636건 ▲2024년 878건에 달했다. 배한진 법무법인 온강 대표변호사는 “잠정조치 위반 시 별도의 처벌이 존재하나 가해자는 위반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피해자에게 계속 접근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혜욱 교수 역시 “현행 보호 조치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실질적 수단이 부족하다”며 “현재 운용되는 전자발찌 역시 사후적 증거 확보 수단에 그쳐 범죄 예방 효과는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두려움의 고리를 끊기 위해
법이 피해자 보호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개선 방안이 필요할까. 먼저 스토킹처벌법의 규정이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 서혜진 변호사는 “현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7가지의 스토킹 유형 외에 다양한 유형을 포괄할 수 있는 별도의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규정 마련과 함께 실무자의 법률 해석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장다혜 연구위원은 “수사관 등 법을 해석하는 실무자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며 “이들이 법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는 시뮬레이션 교육을 통해 다양한 유형의 스토킹 신고에 대응하는 방법을 훈련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잠정조치 기간의 자동 연장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배한진 변호사는 “피해자가 별도로 연장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자동으로 연장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피해자와 연락이 닿지 않아 의사를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피해자를 보호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잠정조치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이를 위반했을 때 더욱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장다혜 연구위원은 “사법기관이 개입했음에도 피해자에게 다시 접근하는 가해자는 위험성이 상당한 사람”이라며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현행 보호 조치 외에도 가해 행위를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추가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김미덕 교수는 “주거·직장·학교와 같은 주요 생활공간을 접근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가해자가 다른 사람을 통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경로를 차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가해자 대상 치료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것은 재범 방지의 효과를 가질 것”이라며 “▲의무적 상담 ▲치료 프로그램 ▲정기적인 경찰 면담 제도로 가해자 특성을 세분화해 맞춤형 교육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노력이다. 배한진 변호사는 “수사 초가에 법관이 가해자 구금의 필요성을 판단할 수 있도록 피해자가 재판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며 “피해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야 가해자가 죄질에 맞는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지 충분히 안내하고 필요한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국선 변호사 등의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피해자 보호명령제’의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피해자 보호명령제는 피해자가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직접 보호 조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서혜진 변호사는 “현행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 명령의 종류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한계를 짚었다. 김정혜 연구위원은 “피해자 보호명령제가 도입된다면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보호 조치를 신청할 수 있다”며 “이는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도 피해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 보호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첫걸음이었으나 지난 4년 그 한계와 과제를 분명히 드러냈다. 제도의 존재만으로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며 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넓었다. 피해자가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법은 실제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보호 장치가 되어야 한다. 스토킹처벌법의 완성은 피해자의 안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출처 : 중대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