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피의자’를 ‘가해자’라고 명명하는 기사나 인터넷 게시글 앞에서 멈칫한다. 수사 기록 속에 적힌 행간을 읽어야 하지만, 한 인간의 미래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낙인’의 무게가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동시에, 혐의만으로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된 듯 사람을 사회에서 추방해버리는 문화 역시 또 다른 폭력이다.
헌법 27조 2항은 유죄 확정 전까지 누구도 범죄자로 단정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대법원은 2024년 1월 4일 선고 2023도13081 판결에서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더라도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존중하되, 진술의 합리성과 객관적 정황을 함께 살펴야 정의가 실현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SNS 타임라인을 몇 번만 내려도 “얼굴·이름 공개” “회사 퇴출”과 같은 문장을 쉽게 본다. 형법 126조가 금지하는 피의사실공표가 사실상 관행이 된 현실에서 ‘사실상의 판결’은 수사 단계에서 이미 내려진다. 언론법 연구는 실명‧초상 보도가 대중에게 “유죄임이 틀림없다”는 착시를 주어 회복 불가능한 낙인효과를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낙인은 결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형사정책연구가 인용하는 라벨링 이론에 따르면, 사회가 부여한 부정적 꼬리표는 피의자의 자아를 잠식하고 가족·직장·지역공동체와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결국 재통합의 길을 닫아 재범 가능성을 높이는 부메랑이 된다.
더구나 최근 5년간 성범죄 사건 통계는 4건 중에 1건이 ‘무혐의’ 판결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는 단순히 “허위 고소가 많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수사와 심리가 성급하게 유죄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무죄추정을 빈틈없이 지키는 절차가 오히려 피해자·피의자 모두에게 정당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품어야 한다.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리고 “피의자의 방어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 두 질문은 대립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은 피해자가 반복 진술로 상처받지 않도록 전문 조사기법을 마련해야 하고, 피의자에게는 변호인 참견권과 증거 열람권을 보장해야 한다. 언론은 클릭 수보다 정확성을 우선하며, 시민은 ‘온라인 인민재판’에 참여하기 전에 공식 판결문을 기다리는 성숙함을 가져야 한다.
무죄추정은 피의자의 특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실을 온전히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우는 족쇄이자 안전망이다. 낙인에 휩싸여 고통받는 피해자, 그리고 억울하게 시선에 짓눌린 피의자—그 둘 모두를 향해 사회가 내밀 수 있는 손은 공정한 절차뿐이다. 성급한 유죄의 도장을 잠시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피해자의 목소리를 더 설득력 있게 듣고, 억울한 이의 눈물도 닦아줄 수 있다. 정의는 결코 가장 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가장 고요한 순간에도 귓가에 남아 있는, ‘의심이 닿는 지점까지는 무죄’라는 원칙에 충실할 때 비로소 빛난다.
형사전문변호사 이고은